씨네21 극장판 2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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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664호(2008/07/29~08/05)

엑스파일 부서가 다시 바빠져야 할 때예요: 돌아온 멀더 요원에게 보내는 편지 - 글: 남명희



멀더 요원, 그동안 잘 도망다니셨어요? 사실 첫마디를 이렇게 시작하려니 어색하네요. 멀더 요원이 스컬리 요원과 도망길에 올랐단 이야기를 전해 듣고 목덜미 좀 잡았답니다. 만날 아닌 것처럼 하더니만 어느 사이엔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었으니 놀랄 수밖에 없어요. 설마 이번에 만나면 또 그렇고 그런 거 아니라고 손사래칠 건가요?


첫마디가 상당히 무례했죠? 미안해요. 하지만 그렇게 미진하게 끝내고 가버린 멀더 요원을 생각하면 6년이 지난 지금도 살짝 억울하답니다. 멀더 요원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하고 나도 그건 이해하지만, 떠난 것은 멀더 요원이지 내가 아니라고요.


멀더 요원이 돌아온다니까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갑자기 실체가 되어 내 어깨 위에 무겁게 내려앉았어요. 지금처럼 멀더 요원이 보고픈 때가 없어요. 돌아올 기약이 없다고 포기했을 때는 과거의 멀더 요원을 머릿속에서 불러내 보고 싶은 모습만 볼 수 있었죠. 하지만 이제 멀더 요원은 실체가 되어 나타날 테죠. 기뻐요. 어떤 모습이건 만날 수 있다니 기뻐요. 그 모습이 내가 기대하는 모습의 100%는 아니겠지만, 기대하지 않는 것이라 해서 기쁘지 않은 건 아니라고요.


세상은 그동안 많이 변했어요. 아니 다시 뒷걸음질치고 있어요. 정치계는 보수건 진보건 무력해졌고, 보수는 무력해진 만큼 폭력적이 되었어요. 가장 환장하겠는 건 그동안 겪었던 좌절과 분노가 그나마 발전이었단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 것이죠. 멀더와 스컬리 요원이 엑스파일 부서를 운영하며 부딪쳤던 거대한 벽, 손에 피가 나게 두들겨도 열리지 않던 문이 이제는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어요. 나를 집어삼키겠다고 말이죠. 전에는 법과 질서의 핑계 안에서 진실을 조작하던 자들이 이제는 법과 질서의 바깥에서 초법권리를 주장하고 있어요. 존재하지도 않는 무기를 핑계로 외국을 침공할 수 있고, 감염위험이 있는 식품을 전세계에 돈을 받고 전파할 수 있게 되었어요. 사건이 벌어져도 과정을 추적할 수 없게 처음부터 눈을 가리고 있죠.


어쩌면 이런 때에 엑스파일 부서는 더 바빠질지도 모르겠어요. 돌연변이가 세상에 넘쳐나고 좀비와 흡혈귀가 거리를 배회하거든요. 사람들은 대놓고 드러나는 괴물에 맞서 싸우려고 하지만 초법자들은 좀비와 흡혈귀를 고용하여 병사로 내세우고 있어요. 저들은 수가 적고 우리는 많지만 힘이 달려요. 그리고 되레 사람들에게 좀비라고 부르면서 머리를 가격할 생각만 하고 있죠. 좀비는 머리를 부숴야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이죠. 사람은 등을 맞아도 일어나지 못하고 다리를 맞아도 일어나지 못하고 머리를 맞아도 일어나지 못해요. 멀더 요원은 흡혈귀를 알아보고 말뚝을 휘둘렀지만 저들은 사람인 줄 알아보고 몽둥이를 휘두르겠죠.


권력협회는 아직도 있어요. 지구의 인간 모두 제물로 바치고 자기들만 살아남겠다고 꼼수를 쓰다 외계인에게 통구이가 되어놓고서도 아직 그 잔당들은 남아 세상의 마지막 날을 대비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세상의 마지막 날은 자신들로 인해 다가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죠. 저들이 준비하는 것은 자기들이 부른 세상의 마지막 날에 탈 방주겠지요. 그리고 그 방주 앞에서 말할 거예요. 모두가 다 살 수는 없다, 그러니 말 들어라.


멀더 요원과 스컬리 요원 다음으로 엑스파일 부서를 맡았던 너겟 아니 도겟 요원과 레이어스 요원 소식은 더 감감무소식이네요. 궁금해 죽겠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듯이 취급되는 거, 그게 두려워요. 나도 그렇게 취급될까봐. 바로 멀더 요원한테 말이죠. 내가 있다는 것이 귀찮을지라도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요. 내가 옆에서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고 과거 사건을 읊어대면서 왜 그때와 다르냐고 투덜거릴지라도 나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해요.


멀더 요원, 돌아와서 기뻐요. 멀더 요원이 세상을 구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멀더 요원이 내가 장밋빛 꿈속에 기억하던 그 남자일 것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멀더 요원은 세상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그 사람이고, 그 옆에 있는 스컬리 요원은 멀더 요원이 약해질 때 여전히 뒤를 받쳐주며 진리를 향한 길을 비춰줄 사람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어요. 그게 바로 엑스파일 부서를 9년 넘게 이끌었던 저력이라는 것도 알고 있죠. 내가 엑스파일 부서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내가 멀더 요원과 스컬리 요원을 좋아하는 것은 두 사람이 허깨비를 쫓기 때문이 아니에요. 허깨비 속에 투영된 우리의 무지와 비겁과 환상을 추적하여 깨뜨리기 때문이죠. 나는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배웠고, 언론은 진실을 말한다고 배웠고, 정치가는 세상을 조율한다고 배웠지요. 그것은 환상이에요. 거짓이라며 울부짖고 절망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그 환상을 위해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거죠.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실천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거죠. 멀더와 스컬리 요원이 그렇게 직접 발로 뛴 심정을 알겠다는 거죠.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줄 속시원한 것이 나타났으면 하고 바라지만 두 사람이 그것이리라 기대하지는 않아요. 내 문제의 해결은 두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이 세상의 진리는 멀더 요원이 앞서니 나는 따르라가 아니잖아요. 말하고 나니 멀더 요원을 아주 거창한 사람으로 올린 셈이 되었네요. 아마 멀더 요원은 그게 귀찮은 것이겠죠. 자신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몇 십년 전에 사라졌고 죽은 것으로 아는 동생의 망령이 아직도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겠지요. 스컬리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 생각하겠죠. 나는 사실 나의 이상형을 멀더와 스컬리 요원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고, 두 사람이 지나온 궤적을 감탄하며 바라볼 뿐이죠. 그리고 내가 그렇게 되고 싶은 거죠.


남들이 무시하더라도, 그 안에서 진실과 진리를 발견하면 놓치고 싶지 않아요. 기성에 대한 혐오로 나 자신을 규정하고 싶지 않아요. 나도 발전하고 싶어요. 나에게 주권이 있는데 쓸 수 없다는 무력감에 지지 않겠다는 결심이에요. 권력협회의 잔당은 아직도 자신들이 모든 권한과 목숨을 한손에 쥐락펴락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권력협회는 자신들이 절대선이며 나머지는 절대악이니 방주에 태울 수 없다 하겠죠. 애당초 그들의 권위가 없음을 멀더 요원이 나에게 알려주었는데, 내가 권력협회의 말을 들을 수는 없겠죠.


멀더 요원이 잠시 도망친 것, 이해해요. 혼자서는 미래와 맞서 싸울 수 없죠. 그래서 잠시 후퇴한 것이고, 세상에는 올라가면 내려갈 때가 있어 나섰으면 물러설 때가 있었던 거죠. 이제 멀더 요원은 다시 앞으로 나설 때라고 결심한 거네요. 저 거대한 벽이 그냥 서 있는 게 아니라 날을 세우고 우리 앞으로 밀고 들어오자 앞에 설 때라고 작정한 거네요. 벌어진 일을 없는 것이라고 무시해도, 거짓 과학의 권위를 앞세워 나를 무지렁이로 포장해도, 사실을 괴담이라 깔아뭉개도, 깜찍한 눈웃음과 눙치는 위트로 절망을 털어내는 멀더 요원과 과학으로 진실을 증명하며 권력의 부당함을 거부하는 스컬리 요원이 나타난 거예요.



아 참, 10년 전에 남극에 파묻혔던 우주선에서 스컬리 요원을 구했을 때 말이죠. 설상차 기름 떨어진 거 어떻게 처리해서 돌아온 거예요? 끝까지 말 안 해주고 갔잖아요. 이번에는 대답 기다릴게요.



2008년 7월 FBI 회계담당 레일라 해리슨 요원




*해리슨 요원은 FBI에서 엑스파일 부서의 회계내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때 엑스파일 부서의 매력에 빠져서 2001년 도겟 요원과 일한 적이 있습니다. 동안에 눈이 지나치게 커서 ‘파워퍼프 요원’이라는 별칭을 듣기도 합니다(출연작은 <인간 파충류>(Alone, 시즌8), <나는 믿고 싶다>(Scary Monsters, 시즌9) 두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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