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종영기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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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세기말의 아이콘이여 "X파일"

  • 2002/10/01
  • 남명희
옛날이 아닌 현재, 미국의 연방수사국 지하실에는 외계인과 돌연변이, UFO를 쫓는 부서가 있고, 이들은 외부에 좀처럼 새어나가지 않는 기밀을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 부서에는 기이한 현상을 잘 믿는 요원과 잘 믿지 않는 요원 둘이서 늘 툭탁대면서 아직도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엑스파일 (The X-Files)>은 확실히 <전설의 고향>같은 괴기성 드라마로서 시작했다. 들으면 코웃음칠 내용. 외계인, 돌연변이, 귀신, 주술. 그러나 엑스파일 사건들은 황당한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있을 법했다. 비현실적, 혹은 의사과학적인 내용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두 FBI의 모험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인식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1x79 Two.jpg

지금이야 상상이 안 가지만 처음 나올 당시, 박봉에 걸맞은 조촐한 옷차림과 외모에서 그다지 튀지 않는 두 수사관의 모습은 리얼리티 그 자체였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나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주인공이라고 믿을 수 없는 요원들이 수사하는 상황 상황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사건진행은 제대로 된 설명도 불가능한데다가 심지어 사건 결말을 흐리거나 폐기하기까지 했다. 시청자들은 화면과 대사 군데군데에 포진해 있는 암시를 통해서 정보를 얻어야 했고, 심지어 해석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 해석을 하기 위해 인터넷과 PC 통신으로 모여들었고, 한 드라마 아래 모인 TV 시청자들의 움직임은 한 시대를 표방할만한 힘을 갖게 되었다.


컬트의 모든 것


드라마 <엑스파일>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필연적 기적이다. 컬트는 말 그대로 컬트일 때는 살아남지 못하고 단명하는 법이다. 주류가 컬트라고 인식할 정도의 일정 규모가 모여야하고, 지속적이어야 했다. 그리고 작품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훌륭한 제작진과 배우가 있어야 했다. 엑스파일은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세상의 조류를 파악할 줄 아는 훌륭한 작가진, 뜻이 맞는 제작진, 훈련된 감독진, 능숙한 배우진, 그리고 이들을 알아볼 안목을 갖춘 팬, 이 팬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한 사회.


‘담배피우는 남자’ 역의 윌리엄 데이비스는 <엑스파일>을 가리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패턴이 바뀌는 순간에 존재하면서 양쪽을 만족시키는 작품’이라고 평했다.[1] 엑스파일의 다스베이더에 걸맞는 명쾌한 분석력이다. 인터넷 세대는 인쇄매체라는 ‘권위적이고 일방통행적인 매체’와 인터넷이라는 ‘근거는 부족해도 개방적인 매체’ 모두에 익숙한 존재였다. 일반적 지식을 거스르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권위성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세대였다. 근거부족이라 주장해도 진실은 은폐할 수 없고 존재한다.


S3 Two.jpg

그러나 진실의 존재의의에 비해 주인공이라고 하는 멀더와 스컬리는 죽도록 고생을 하고서도 얻는 것은 없고 상처투성이로 남겨진다. 팬들은 주인공들의 댓가없는 진리추구에 현대인의 절망감이란 면에서 공감을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는 혹은 존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 경도될 수밖에 없었다. 허구라고 생각하고 도외시해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위협한다고 해서 순순히 굴복하지 않는 존재, 멀더와 스컬리 자체가 진리를 향한 빛이 되었다.


<엑스파일>이 놀라운 점은, 시대를 반영하고 소화했을 뿐더러, 그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색깔을 유지할 방법을 알았다는 점이다. 90년대 초반까지도 TV 시리즈는 좀 유치해도 되는 종류였다. 아무리 뛰어나봤자 TV 시리즈였으며, 즐기는 사람들조차 저급하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엑스파일>은 그 암묵성을 깨 버렸다. TV는 영화보다 못할 이유가 없었다. TV 시청자들은 일회성이 아닌 정기적인 지적유희를, 탐구심을 넘어선 숭배대상을 만나게 되었다. 초기에 <엑스파일>이 불러일으킨 ‘그거냐 아니냐’의 논쟁은 녹록치가 않았다. 깊이를 요구했다. TV 주제에 지성과 과학을 요구했다. 초반부터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의사과학 혹은 자연과학적인 해석을 동원해야 했다. 또한 <엑스파일>이 외적으로 보여주는 현상 - 컬트적 인기, 90년대 반영 등의 사회과학적 논쟁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엑스파일은 결코 친절한 TV시리즈가 아니었다. 사건설명은 불충분하고 결말은 종종 은폐되곤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팬들을 창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적 설명이나 초자연에 대한 지식은 점점 ‘엑스파일이니까 그렇지’의 관습으로 굳어가면서 논쟁도 바닥이 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엑스파일>에게는 예상치 못하던 면이 있었다. < 엑스파일>은 한마디로, 드라마의 작품성이 너무나 뛰어났다. 그냥 TV이기를 거부했다. 주류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TV계의 아카데미, 에미상도 TV계의 이단아 <엑스파일>의 작품성만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엑스파일>은 세 번째 시즌에서 에미상을, 네 번째 시즌에서 골든글로브를 수상함으로서 드라마적 실력을 인정받았다. 여느 영화도 못 따라갈 자기반영적인 에피소드를 내놓는가 하면, 어떤 안건에 대해서 정치적 해석을 열어놓고, 치밀한 인간상의 모습을 드라마 안에 녹여놓는 솜씨는 천의무봉이었다. 그렇게 되어 <엑스파일>을 둘러싼 토론은 끝나지 않고 드라마 자체를 해석하는 ‘인문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망가진 스컬리, 시리즈의 몰락


<엑스파일>은 다른 TV 시리즈와 유달리 차별성이 있었다. 드라마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제작 단계에서부터 남달랐다. 일반적으로 미국 TV 시리즈 제작체계는 매 편마다 제작 관여자가 다 다를 만큼 느슨한 반면, <엑스파일>은 집약적이고 가족적일 정도의 협력체제를 유지했다. ‘참여하면 영광과 보람, 그 대신 개고생’. 장소섭외자 일트 존스의 명언이다. <엑스파일>의 제작자 크리스 카터가 첫 시즌부터 극장용 영화에서만 활약하던 특수촬영 전문가 맷 벡을 삼고초려로 영입시켰다는 뒷이야기는 완성도에 얼마나 집착했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엑스파일>도 드라마였고, 그 한계가 결국은 5년이 넘자 보이기 시작했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위기를 가져온 것은 결국은 드라마적 속성이었다. 세월이 가면 갈수록 허풍이 쌓여 사실성을 잃어간다. <엑스파일>은 진실 즉 정보를 누가 소유하느냐는 파워 게임의 재미를 쌓아가면서, 정작 ‘진실’은 공허한 말장난이 되어버렸다. 9년을 지내오면서 <엑스파일>은 수많은 변화 혹은 몰락을 겪어왔지만, 마침내 주연 배우가 드라마를 포기하고 나가버리자 이야기가 주체를 못할 정도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9년 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온 엑스파일 시리즈는 마침내 멀더가 빠지면서 삐걱댄다. 새로운 인물이 투입되면서, 냉철하던 스컬리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시리즈의 몰락이었다

사실 새로 투입한 주인공들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도겟의 강직함과 레이어스의 애매모호한 성격은 멀더 스컬리의 단순 변주가 아니었다. 그러나 새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해 남아있는 이전 주인공 스컬리의 역할을 왜곡한 것이 문제였다. 스컬리는 멀더의 아이를 임신했고, 호르몬 변화 탓인지 지난 7년간 보여주었던 성격을 버리고 남에게 짐만 되는 여자인물로 전락해버렸다. <엑스파일>이 이루어낸 업적 중 하나, ‘남자 주인공과 대등한 여자 주인공’인 스컬리를 망가뜨린 것은 정말로 같은 제작진이 저지른 짓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스컬리는 단지 딴지 거는 사람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동등한 여자 파트너였다. 멀더가 없자 짝퉁 멀더 행세를 하는 스컬리는 실수 중의 대실수였다.


아무리 스컬리 역의 질리안 앤더슨이 뛰어난 연기자라고 해도 엉망이 되어버린 대본을 상쇄할 수는 없었다. 도겟 역의 로버트 패트릭과 레이어스 역의 애너베스 기쉬가 아무리 앙상블 연기를 이룬다고 해도 스컬리가 그 모양이면 소용이 없다. 여러 가지 신빙성 있는 인터뷰를 보면 도겟과 레이어스 체제를 출범시킬 때만 해도 시즌 11 내지는 12까지도 염두에 두었지만 결국 시즌 9로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멀더의 퇴장보다도 스컬리의 변질이 <엑스파일> 자체의 쇠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9년간의 대장정, 막을 내리다


망가진 스컬리, 쇠락한 시청률 이외의 또다른 엑스파일의 ‘망조’가 등장했다. 시대가 변한 것이었다. 이제 세기말을 넘어 2000년대 미국은 보수주의 시대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분위기는 바뀌어버렸다. 특히나 2001년에 일어난 911 사태는 미국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꿇으라면 꿇어야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엑스파일>이 ‘멜로물’로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기본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 믿을 놈 하나 없다는 절망을 기반으로 하는 드라마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1013 제작진이 911 테러 반년 전에 발표했던 <엑스파일>의 스핀오프 드라마 <론건맨>에는 증인을 없애기 위해 증인이 타고 있는 비행기의 항법유도장치를 해킹, 세계 무역센터에 박아버리려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이 정도의 제작진이 2002년의 보수주의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마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이다. <엑스파일>이란 한 우산 아래 모여서 즐길 수 있었던, 좋았던 시절은 가 버린 것이다.


그래서 <엑스파일>의 종영은 묘한 아쉬움과 허전함과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내 인생에 변화를 준 요소는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마음에 품고 싶을 만큼의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나는 자신있게, <엑스파일>이 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아이콘이며 내 인생을 바꿔준 터닝 포인트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엑스파일과 동시대에 태어났다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라 생각한다. 9년간의 수많은 배신 혹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닫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아쉽다. ‘시들기 전에 장미꽃을 모아라’라는 로버트 헤릭의 시가 실감이 나고, ‘엘비스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멤피스를 걷는 것이 꿈만 같다’는 셰어의 노래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9년간의 짧고도 긴 세월을 마무리한다. 꼭 끝을 보아야만 할까? 끝은 있는 법이고, 지금이 그때인 것은 틀림없다. 이 드라마가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이전의 영광을 다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9년간의 대장정에, 내 인생의 한 이정표에 이렇게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고마워요, 엑스파일.


© Twentie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은 감사광고 프로젝트와 같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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