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조직하는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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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O 98/08 dossie 자기조직하는 우주

X파일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어둠에서 시작된다. 어둠 속에 형체를 알 수 없게 가려진 미지의 것-X에 대한 갈망은 우리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차원의 질서를 구성하려 하는 오래된 자기조직의 의지, 우리가 생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고 진화하게 하는 의지이다.

  • 자기조직

생물적, 생태적, 사회적, 문화적 구조들에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출현을 밑받침 하는 역동적 원리. 자기조직 역학은 생물과 무생물계 사이의 고리를 이루며, 따라 서 생명은 생명이 없는 물리적 실재 위의 얄팍한 상부구조가 아니라 우주역학의 내재적 원리이다. -에리히 얀치 [자기조직하는 우주] 범양사

▶ text 남승희


극장판 1의 리뷰입니다. 1998년도 키노 8월호 dossie에 실었던 글의 원본으로 빠졌던 부분을 보완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마치 보는 이의 대뇌 전두엽으로 침투할 것만 같은 검푸른 빛 유체의 스멀거리는 움직임이 그 모습을 거두자마자 첫씬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은 확연한 두려움이다. X파일 극장판이 기원전 3만 5천 년까지 거슬러올라가서 방점을 콱 찍어버리는, 이 지나치게 무섭고도 위협적인 존재는 과연 그동안 수많은 논란 속에 나타났다 사라졌던, 바로 그 존재가 맞는 것일까? 의문스럽다.


외계인의 존재는 지금까지 X파일 티비 시리즈에서 때로는 믿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때로는 정부의 음모일 뿐인 것으로 끊이지 않고 의심받아왔다. 외계인은 그림자로, 흔적으로, 헛것을 본거라는 타인의 논박에 대항할 아무런 증거도 남겨주지 않는 한 순간의 이미지로, 풀리지 않는 신비스러운 현상의 이유로서만 존재했다. 그 증거를 잡기 위해 고전분투하던 멀더마저 최근의 시즌 5에서는 스스로의 모든 가설을 포기하고 정부의 조작이라는 가설만을 고집하는 아이러니에까지 이른, 아주 오래된 주제의 변주곡이라고 할 만하다. 이 존재가 갑자기 화면 속에서 구석기인들을 공격하는 검은 기름으로, 뾰족한 턱의 외계인으로 나타나 스스로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제시할 때, 알던 사람은 정말 황당해진다.


컬트가 블럭버스터가 될 때, 어떤 변환이 일어나느냐를 묻는다면,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98년 여름 개봉작 X파일은 TV시리즈 X파일과 똑같다. 배우들을 비롯하여 인물, 기본 설정, 수법, 카메라, 시간적인 흐름, 모든 것이 같다. 당연히 시간이 두배로 늘어났고 인물 소개를 위한 의도적인 씬들이 끼어들었지만, 전반적으로 스케일이 커졌고, 그 많은 인물들이 한 편에 다 나오고, 외계인 에피소드와 음모론 에피소드를 요약적으로 식민지화 음모 하나로 묶은, 누구 말대로 종합세트라고 할만한 대작이 되었지만, 이것은 바로 그 드라마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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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트를 외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기들만의 완전한 공유를 소수가 체험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때, X파일은 컬트이다. 마리화나나 항정신성 의약품의 도움 없이도 우리의 대뇌피질을 잠식해들어오는 두려움과 흥분은 너무나 강력하고 풍부한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어서, 이것을 컬트라고 부르기에 무리가 없다. 가장 중요하게는, 자아라는 편견에 지배당하는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 전혀 다른 구도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 X파일이 가져오는 딥임펙트 deep impact이며, 혜성충돌보다도 무서운 외계인의 침입이다.


X파일은 현재까지 우리들을 지배하고 있는 상식과 편견을 깨뜨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비추어주는 문제들을 제기한다. 상식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원리를 무시하고서 우리의 모습과 성격, 존엄성 등속을 단언한다. 편견은 우리의 자아에 대한, 몸에 대한, 인류와 지구위의 생태계 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이해를 거부하고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생활이라는, 자기 눈이 보고 싶어하는 보잘것 없는 증거에만 매달린다.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이 X파일에서 기존 제도권이 보여주는 유일한 소통가능성이라고 할만 한데, 그 증거들은 늘 엄청난 동원력을 자랑하는 비밀조직의 수하에 의해 사라지고, 독점된다. 그리고 사실상 물질적 증거를 제시하더라도 역시 그들의 반응은 이것은 '이해불가능한 물건'이야 라는, '이것은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될텐데, 이는 자기의 속좁은 패러다임 밖의 어떠한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체계의 보수성 때문이다. 많은 미국 영화를 보면 늘 엄청난 중요성을 갖곤 하는 증언은, 여기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의 구실과 같이, 증언이 상식에 어긋나기 때문이겠지만, 또한 더 깊이 들어가자면, 개인의 증언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라고 하는 개인에 대한 믿음 자체를 와해시키는 증언들이기 때문이다.


X파일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어둠 속의 존재를 끄집어내어 현실의 낮과 등가로 놓는다. 상식과 양심만으로 치장하길 원하는 자아가 부정한다 해도, 자아보다 훨씬 큰 본성이, 다양성이 우리에게 반증을 제시한다. 드러난 의식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가 다른 '계'로서 힘을 지니고 있으며 합리적인 이유로써, 공존하길 원하는 것이다. 이 두 FBI 요원의 수사물이 수없이 계속되어온 환타지와 공포물들과 다른 점은, 기존 질서 아래에 오락물이라는, 내일의 노동을 위한 잠시의 릴렉스 레크리에이션 타임용으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고, 종종 우리가 배워 가진 이성을 혼돈에 빠뜨린다는 데에 있다.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추리물의 구조와 사건을 구성하는 두 사람의 가설의 대립, 어둠 속에서 쉽사리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사실'과 이 모든 것을 엮어가는 호흡-사유의 선은, 우리의 생각을 흔들리게 하며 그 요동 속에서 전혀 다른 것을 마주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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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라는 작은 행성 외의 다른 곳에서 자기 나름의 진화를 거듭해 발달된 문명을 지닌 외계인의 존재는, 우리 존재의 위치를 순식간에 바꿔버릴 수 있다. 종교에 따라서는 신의 형상을 하였기에 특권을 받은, 혹은 인류의 이상에 따르자면 어디에서 근거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절대적인 '특권'을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성이나, 특별함은 불가능해진다. 만약에 외계인이 실재한다면. 이미 유전공학은 사람도 복제할 태세가 되어있음에도, 생물학의 진화론적 성과는 인간의 존재가 생태적으로 어떤 위치에 처해있고 그의 두뇌는 어떻게 특출난 형태의 의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해 가장 적합한 설명들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는 억지와 편견은 디딜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외계인의 존재는 우리의 존재 위에 포개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존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공중에 뜬 편견들을 안 날라가게 잡아주는 것은 인간의 주관적 환영에 기초한 '경제'라고 하는 것과 '사회'라고 하는 것, 그 최소 단위라는 '가족',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인정해야만이 생존이 가능하게 하는 것들이다. 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아는 형성될 것이다. 이전엔 중대한 역할을 종교가 하던 시절도 있었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가 반드시 자기 안에 있을 필요는 없다. 사제이거나 가장이거나, 어쨋거나 권력의 자기장이 형성되면 되는 것이다. 사실, 근대화 사회처럼, 개인에게 이렇게나 거대한 스트레스를 발생시킨 사회는 없었다. 2차 대전후에야 비로소 인간이 발견한 혹은 발명한 전후후무한 거대한 스트레스와 부가 질병 속에서, 많은 서구인들은 스스로의 정신을 검진받으며 환자취급받기를 허락하고, 자아의 성 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 경제 본질적으로 경제란 인간 의식의 과정계의 일종이다. ... 경제는 본질적으로 심리적 요소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주관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로 짜여진 하나의 세계다. [자기조직하는 우주]


지금의 각종 개인화 장비가 발달하여 최대한 가족과 멀어진, 최소의 사회적 관계만으로도 개인이 유지할 수 있게 된 상황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우리의 자아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적 관계의 압박에 대해서, 그 결과 가정되는 자아의 넘을 수 없는 '경계'에 대해서 나는 기존의 윤리, 담론과는 다른 시스템을 제시하려 한다. 나는 망상과 구분되는 올바른 인식이란 것이 있다는 주장에 회의를 품고 있는데, 내가 얻는 결론이 다른이들의 '헛된 망상'과 다른 점은 오직 내 망상의 적절함에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게으름뱅이의 정신분석]을 쓴 기시다 류와 비슷한 면이 있는데, 기시다 류는 일반인들이 '사회적 현실'이라고 부르고 있는, 복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망상을 '공동환상'이라고 부른다. 개인이 가지는 사적환상에 대립하는 것인 공동환상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 아니라 단지 사회생활을 할 필요가 있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의사현실', 쉽게 말해 '가상현실'일 뿐이다.


우리가 예술, 혹은 오락이라는 제도로써 즐기는 것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허구이다. 동양권의 특징적인 향수태도인 '감정이입', '자기동일시'는 어디로곤 뻗어나가는 망상-주체의 권리를 부분적으로나마 제도적으로 허용한 사태인 것이다. 망상 론의 입장에서는 공인된 허구와 공인되지 않은 허구, 지렁이가 갖는 망상과 인간이 갖는 망상, 8비트짜리 게임기가 갖는 망상과 팬티엄급 컴퓨터가 갖는 망상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라는 것은 없다. 물론 좀더 고급인 망상, 다차원적인 망상, 적절하게 경제활동에 쓰일 수 있는 망상은 구분되며, 선호될 수 있다. 그러나 바깥의 사물들을 인지하는 시스템들은 망상을 가지며, 이중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실용적인 망상이 곧 적절한 진리가 되는 것이다. 올바른 망상이란 없다. 이를 무시하고 어떤 절대적인 진리나, 시점을 주장하는 이론은 파렴치하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사회적 현실'이라는 공동의 망상은 합리적이며 당연히 실용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수많은 자살자들과 범죄자들, 스트레스성 질환자들은 뚜렷이 보여준다. '현대인'이라고 하는 우리들 역시 반증이 되기에 충분하다. '사회'는 '일탈자'와 '정상인'을 구분하려 하며, 보편 적인 '사회적 현실'에 따른 '보편적인 자아의 답안'을 제시하려 하나, 그것은 늘 지나간 시대의 버릇들을 신성시하고 되풀이하는 억지로 가득 차 있다. 그것에 대 해서 '일탈' 이상의 수준을 획득하기 위해선 자신의 제멋대로의 망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선들을 확보해야 한다. 점차 제대로 된 네트를 이루어가고 있는 사이버 스페이스는 자율적인 망상에 대해 강력한 아군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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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란 인간이 기실 지켜야 되는 것으로 믿으면서도 어려워하고 무거워하며 종 교에 기대어 혹은 사랑에 기대어 잠시라도 잊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냥 잊혀지지 않으며 '재조정'을 필요로 한다. 만약에 이 경계를 아무 때나 넘나들기 위해 '사회적 의미화 과정'을 포기했다면, 그 사람은 정신분열자가 된다. 인간이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B.C. 8세기에서 B.C. 3세기에 걸쳐서이다. (신화적인 주술세계를 극복하고 현실적 경험을 넘어 보편세계로 눈을 돌린 사상과 종교가 그리이스, 인도, 중국, 중동에서 발달한 것이다. [인간학으로서의 수학] 김용운, 시성문화사) 생명의 39억년 역사에 비하면 그다지 오래되지도 않은 전통이다. 그러나 이 '짧은' 전통에 짓눌리기를 멈추고 적절한 의식의 다차원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언어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가 자아를 구성하는 것들을 밝혀내고,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스스로의 특권- 착각을 내버리는 것은 단지 해체과정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보수주의자들은 이건 더 이상 인간이길 원하지 않아 동물이 되려하는, 물질이 되려하는, 혹은 아무것도 아닌 無로, 카오스로 돌아가려 하는 작태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X파일과 우리가 공유하는 모험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신비주의도 니힐리즘도 아니며, 모든 필연을 거부하는 대신 결정론만을 거부하며, 열려진 모든 가능성 속에서 우리 자신이 걸 어온 진화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여행이며 자극들이다.


나는 X파일이 프리고진을 비롯한 새로운 과학들의 친구로서, 공명으로서 진행한다고 본다. 치명적 바이러스 와 공생하는 변종의 발생이라든가 암세포 변종 등의 에피소드는 직접적으로 관련 을 맺고 있지만, 여기에 한정되지 않고 전반에 깔린 기본 방식으로서, 결정론적이 고 환원론적인 모든 지식과 그 규칙에 대한 반론의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늘 우리의 자아를 넘쳐흐를 우려가 있는 본성은, 생명의 자기갱신 자체로서, 새로 움과 확인 간에 균형을 맞추며 나아간다.

100% 새로움은 아무런 정보도 줄 수 없으며 혼돈일 뿐이다. 100% 확인 또한 정체 혹은 죽음을 가리킨다. [자기조직하는 우주])

새로움과 확인 사이의 요동으로 자처하는 것이 X파일이다.



미지수 X는 하나의 단언을 포함하고 있다. 제목 자체에서 직관적으로 제시되는 개념은 향유자에게 스며든다. X는 곧 권리를 가졌다. 그것은 알 수 없는 것, 말할 수 없는 것의 권리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혹은 다수의 동의 를 얻을 수는 없지만, 어쨋거나 그것은 존재하며 無와 등치할 수 없는 에너지와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으로서 우리의 삶은 새로운 차원으로 구 성되어 나갈 수도 있다. 수많은 개인들과 요구들과 수준들의 함축을 가능하게 하는 X는 방향전환이며 에너지의 새로운 조직법인 것이다.


우리는 X세대와 X파일, 그리고 탈산업화 시대라는, 탈영토화의 가속화 지점에서 보이는 유사점과 관계에 대해 얘기해 볼 수 있다. 현재의 십대와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 사이를 불어닥치는 패션이 과연, X세대라는-혹은 신세대라는 언어 없이 도 가능했을까.

젊은이들이 남들의 눈에 벗어나는 옷을 입기 위해서는 X세대라는 빽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입고 싶은 옷을 입어도, 놀고 싶을 때 놀아도 용 서가 되는 것은 그가 X세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유가 없이는 단 한 가지도 문 화적 행동을 할 수가 없는 동물로서, '난 나야' , '내 느낌대로' , '감성적으로 행동 할 수 있어' 라는 언어를 내뱉어야만 한다. 합리성이나 가족, 민족, 윤리의 이름으 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럴만 한' 윤리적 존재라는, 소통가능한 얼굴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X-는 언어를 벗어나는-, 합리 적 설명을 벗어나는-, 전통을 벗어나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탈-언어는 새로운 언어를 만드는 것으로, 탈-합리성은 새로운 합리화를 행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물론 X세대는 산업화의 결과물인 부를 가지고, 이전의 부를 만들어냈던 노동의 윤리와 가치와 절연할 수 있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창출과 함께 파워를 가지는 것이다. 탈산업화라고 부르는 변화, 정보화라고 부르는 변화란 것이 없이 돌연 X 세대라고 하는 윤리인들이 나타났다고는 볼 수 없다. 기술발전이 점차 노동과 절 연해가는 탈노동화와 기존의 가치들을 해체하며 새로운 윤리성을 향해가는 탈가치 화가 아무 연관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다.

이 유사성 사이에는 맑스주의 교과서에 나오는 '토대와 상부구조론' 도식을 뛰어넘는 풍부한 관계성이 있다. 노동양식과, 생활양식의 변화는 윤리의식의 변화와 함께 자기촉매적인 관계 를 이룬다. 그 방향은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있다. X파일이 총체적이고 감 성적이고 지적인 방법으로 그려내는 존재의 모험에는 언제나 기존의 억측을 뒤엎고 새로운 가설을 통해 차원을 확장하는, '나'라고 하는 것의 다른 수위를 찾아내 는 자기조직의 운동이 있다.


이러한 X파일의 기본성격을 인정한다면, 극장판-블럭 버스터는 TV시리즈-컬트 를 희석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전개 방식이 기본적으로는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멀더 스푸키의 망상이냐 아니냐를 놓고 싸울 여지를 남겨주지 않고, 스컬 리 손에 들어간 증거가 곧장 그 의미를 현실화하며, 비밀회합의 모습과 행태를 상당히 자세히 보여줌으로써 '트릭이 아니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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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리즈의 강한 헷갈리기 작전보다는 확실히 단순해진 성격은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에게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매니아들을 위해서는 아는 것을 질질 끌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 다. 어쨋거나 완전히 고질라 새끼 내지는 랩터 소리를 내면서 등장한 위협일변도 의 외계인은 알 수 없고 신비스러운 이미지의 선배들에 비해 밀도가 떨어지는 것 이 사실이다. 마치 식물이나 균류의 포자처럼 바이러스 형태로 침투하며, 인간의 몸을 숙주로 자라나서 성체-외계인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 되는 외계인 (혹은 변종)의 위협은 마치 [바디 스냅처]나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보는 것과 비 슷한 패턴으로, X파일의 선입관이 없는 사람에게는 관습적으로 '적'으로 규정된 외 계인과의 투쟁과정 정도로 이야기가 이해될 위험성까지 지닌다. 외계인론과 음모론을 교묘하게 접합시킨 기술은 놀랍지만, 단순해진 외계인의 이미지와 함께 '식민지화'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 이해가 되어버리고 추리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희석화된 상태로 모습을 나타냈지만, 역시 X파일은 X파일임에 틀림없다. 세련되고 화려한 말투로 위장하지만, 근본적인 자극은 동일하다. 한편으론 '비중독 자'들을 배려한 백신이기도 하면서, 극장판이라는 이점을 이용하여 더 시각적인 기 법에 의지하는 고단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거대한 클라이막스의 비밀기지 붕괴, 우주선, 그 모든걸 다 제끼고 아무래도 맨처음 시작하기 전의 로고와 크레딧이 될 것이다. 가슴을 움찔거리게 하는, 아름답고도 위협적인, 죽음과 삶의 경계를, 개체 와 전체의 경계를 아무 장애 없이 넘나드는 유체流體, 흐르는 존재의 모습. 이것은 어찌보면 시즌 4에서 처음 선보인 검은 기름을 연상시키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X파일 로고로 둔갑해 버린다.


흐름은 영화 후반에서 다시 확인을 시켜주는데, 남극의 거대한 하얀 눈언덕과 사 막의 끝도 없이 펼쳐지는 모래 구릉은 단지 비밀조직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를 택해서 장소를 정했기 때문이라고 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강렬한 인상 을 풍긴다. 단지, 멋진 경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체의 유사성을 계속 발견하기 위 해서가 아닐런지. 물론 크리스 카터는 화면이 좋아서, 라고 발뺌할지 모르지만, 모 든 유사성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현대의 스포츠와 사유의 유사성에 관련해 들뢰즈가 하는 얘기는 무척 흥미롭다. 스포츠나 관습에 있어 운동이라는 개념이 바뀌고 있는데, 예전에는 달리기나 던지 기 등 하나의 근원점 혹은 지짓대를 가지고 힘을 쓰는 식이었는데 반해 요즈음의 스포츠는 서핑, 행글라이딩 등으로 이미 존재하는 파동 위로 개입되는 것이다.

'출발점으로서의 기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궤도진입방식이 있을 뿐이다.' [조정자들], [대담] 솔

이와 같이 본다면 사유도 예전의 모더니즘의 버릇인 기원으로 돌아가려는 것과 달리 이미 있는 흐름을 타고 들어가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흥미롭고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만약에 이런 유사성을 작품에서도 발견한다면, 작가가 모든 작품의 요소들과 전체의 시발점이자 중심으로서, 지배자로서의 권력을 행사하길 바라는 것은 모더니즘의 버릇에 아직 발목을 붙잡힌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X파일이 근원점으로서 작용하려고는 꿈도 꾼 적이 없으며 우리에게 달려드는 수많은 파도, 중대한 흐름, 아름다운 굴곡들을 적절히 나뀌채서, 하나의 훌륭한 여행과정을 만들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따라서, 크리스 카터나 그외 훌륭한 배우들과 감독들, 스탭진들은 각각 뛰어난 조정자로서 이 운동을 조절했을 뿐, 어느 누구도 창작자의 소유권을 독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대의 복잡다단한 정보의 흐름과 네트 속에서, 어느 개인에게만 오리지날리티를 추궁한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며, 중대한 창작과정들은 점차 집합적 두뇌collective brain에 의해 이루어진다. 매체는 단순한 하드웨어가 아니며 집합적 지성, 집합적 감수성, 집합적 영혼이 서게 되는 신경절이 되는 것이다. 두뇌는 반드시 회색뇌 안으로 숨을 이유가 없고 관계망 사이사이에서, 컷과 컷의 연결에서 존재할 수 있다. 그 큰 스크린으로 본 영화 X파일에서 내 마음을 훔쳐가는 그 거대하고 아름다운 흐름의 모습은 X파일 자체의 영혼, 지성을 유추하게 한다. 어찌보면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유체, 물질의 흐름일지 모른다. 사유하는 것은 그 이미지이지 제작진이나, 보는 내가 아니다. (프리고진과 공명하는 것은 X파일로 충분하지, 크리스 카터까지 그 모든걸 의식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해도, 우리는 이미 빨아들이고 있다.


인간이 이 지구에 대해서 지배권을 보장받은 바가 없으니, 외계인이 와서 우리 몸을 숙주로 삼고 번성한다 한들, 혹은 다 잡아먹어버린다 한들, 우리는 아무런 할 말이 없을 지도 모른다. 만약에 우리 인류와 외계인 간에 경쟁과 도태 관계만을 설정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실상, 인류는 어떤 생명체도 대륙도 지배한 적이 없었고, 수많은 박테리아와 식물과 곤충과 동물과 공생관계를 이루어 진화해왔다. 지금 우리는 어떤 겁없는 침팬지가 인류로 도약할 때와, 어떤 곤경에 처한 박테리아들이 공생관계를 이루기로 할 때와 다를 바 없는 두려움과 흥분 속에서, 인류가 만든 네트워크를 가지고서 새로운 진화의 도약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외계인은 '또 다른 길'의 한 가지 가능성이다. 린 마굴리스의 추측대로, 지구상의 생물진화의 정점은 인간이 아니라 자가번식이 가능한 기계 장치로 귀착될 수도 있다. ([마이크로코스모스] 범양사) 인류가 문명의 최근 시기에 지구 곳곳에 번성시킨 뛰어난 컴퓨터 시스템망은, DNA 종족인 인류를 딛고 가장 뛰어나고 완벽한 두뇌로서, 완벽한 팔다리로서 기능하며, 자율적 존재로서 탄생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다.


진화가 진행될수록 생겨나는 성숙한 체계들에게 있어선, 환경보다는 그 체계 자체에 원인을 두는 요동들이 진화를 가속화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인류라는 진화과정에 따른 성숙한 체계는 자신과 지구의 운명을 끌어가는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차원을 확장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지구 생태계와 또한 미지의 영토(우주개발에 따른)의 진화와 관련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달라질 것이며, 어떤 것이 출현할지는 결정론적인 예측은 불가능하나 자기조직하는 체계들의 노력, 상호작용에 따른 진행에 따라 곧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유에프오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미래를 만들고 있다.




  • 이 글은 영화잡지 KINO와 저자 남승희에게 권리가 있습니다. KINO와의 협약에 따라 허가받지 않은 홈페이지에 실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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